인터뷰
9월 인터뷰 ON (2) 한선학 고판화박물관장님
등록일
2022-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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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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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판화는 디자인의 원형이고, 그림책의 원조
고판화박물관은 디자인의 보물창고
들어가는 말
강원도 원주시 신림면 황둔리, 치악산 자락에 위치한 명주사 고판화박물관은 2004년에 개관을 했다. 이곳은 우리나라처럼 판화가 발달했던 중국, 일본, 티베트, 몽골, 인도, 네팔 등 여러 나라에서 한선학 관장님이 직접 수집한 고판화를 전시하고 있는 박물관이다. 이곳에는 현장에서 판화 체험을 할 수 있게 만든 판화체험관도 함께 운영되고 있는데 2005년부터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실시하는 사회예술교육 프로그램 실시기관으로 선정된 바 있다. 이곳은 규모는 작지만 소장품은 어느 박물관에도 뒤지지 않을 귀중한 자료들로 채워져 있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고판화박물관이다.
Q 고판화박물관은 어떤 곳인지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저희 박물관은 19년 전에 개관을 했는데, 그때만 해도 박물관 숫자가 300개 밖에 안됐었는데 지금은 1,000여 개까지 늘어났습니다. 폭발적으로 늘어난 1,000개의 박물관 중에서도 우리 박물관은 전국에서 유일한 판화박물관입니다. 저희 박물관에는 한국뿐 아니라 중국, 일본, 티벳, 몽골, 네팔, 베트남 등에서 수집한 유물이 6,000여점이나 있습니다. 흔히 ‘판화’라고 하면 우리는 미술시간에 배워서 미술로만 이해하지만 인쇄된 그림이 ‘판화’입니다. 그러니까 판화는 인쇄와 그림의 복합성을 띠고 있습니다. 우리 박물관은 인쇄박물관에도 속하고 또, 미술 박물관에 속하는 곳입니다. 해인사와 저희 박물관이 국외의 학술대회에 초청을 받아서 다녀온 적이 있었습니다. 일반적으로는 해인사는 팔만대장경이 있으니까 우리 박물관은 게임이 안 될 것 같다고 생각하실 것 같습니다만, 세계가 해인사만큼이나 알아주는 세계적인 인쇄박물관 중에 한 곳이 바로 이곳 <고판화박물관>입니다.
▲ 치악산 명주사 고판화박물관
Q 조선시대 원주 지역이 출판의 거점으로서 어떤 역할을 했을까요?
원주는 조선시대에 인쇄문화가 발전된 곳이었기 때문에 원주한지도 발전할 수가 있었습니다. 흔히들 원주한지가 유명한 이유는 호저면에서 닥나무가 많이 심어졌고 생산됐기 때문에 호저(好楮)의 ‘저(楮)’자가 ‘닥나무 저’자로 생산, 공급에만 치중돼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공급이 되려면 수요가 많아야 공급도 가능할 수 있었습니다. 한지를 필요로 한 원주감영이 있었기 때문에 원주 한지가 많이 생산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감영들은 도청의 다른 일들도 많이 하지만 인쇄를 만드는 공방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륜행실도』나 지방학교인 향교에서 필요한 교과서 같은 책을 만들면 중앙에서 모두 지방 학교까지 내려 보내주는 게 아니라 책을 몇 권만 만들어서 지방 감영에다 주고, 감영은 그 책을 다시 뜯어서 목판에다 뒤집어 붙이고 다시 새긴 다음 그 책을 많이 만들어서 지방 학교인 향교까지 내려 보내주었습니다. 그것뿐만 아니라 강원도민이 지켜야 될 규약이라든지, 보험이라든지, 중앙 정부에서 구휼미를 나눠준다든지 이런 것들이 책으로 만들어질 때 감영에서 만들어서 보내주었던 것입니다. 원주는 500년 동안 감영이 있었던 곳입니다. 그러니까 500년 동안 인쇄문화가 찬연히 발전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대부분 원주를 군사도시로 알고 있고 강원도의 ‘문화도시 일번지’는 강릉, 춘천 그 다음이 원주라고 생각하지만 원주는 고급문화인 인쇄문화가 발전된 곳이고 그런 자랑스러운 문화를 갖고 있는 곳이 원주라는 사실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Q 고판화가 갖는 매력을 한 문장으로 정의해 주신다면?
고판화는 ‘디자인의 원형이고, 그림책의 원조다.’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일반적으로 판화의 시작을 값비싼 미술품을 여러 장으로 복제해서 만들기 시작한 것이라고만 생각하는데, 사실 고판화는 인쇄의 역사와 함께 갑니다. 중국에서 불경책을 만들기 위해서 목판으로 새겨서 인쇄로 찍었는데 그 인쇄인 글자와 부처님 얼굴을 새긴 다음 도장으로 만들어서 찍은 그림이 책 속에 합쳐져 삽화로 발전한 것으로 그 역사가 천년 이상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인쇄와 판화, 따로따로 놀던 두 개가 합쳐지게 됩니다. 글 속에 그림이 들어가기 시작하면서 판화가 본격적으로 폭발적인 발전을 하게 된 것이죠. 일반적으로는 그림책의 원조를 서양 책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지금 말씀드린 대로 동양의 고판화 책이 그림책의 원조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저희 박물관에는 그림이 들어가 있는 옛날 책을 1,000여권 정도 가지고 있습니다. 고판화를 새길 때 붓으로 그리듯이 디테일하게 해주면 새기는 사람이 작업하기 어려우니까 그걸 새기기 좋게 화가가 원고를 그려야 해서 판화가 디자인화 될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판화는 전부 디자인적인 것입니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적인 키워드 중의 하나가 디자인인데, 저희박물관의 유물 6,000여 점을 콘텐츠화시키면 10만점 이상의 ‘디자인의 보물창고’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Q 고판화를 수집하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경험을 소개해 주시기 바랍니다.
수집가에게 작품들은 모두 스토리가 있는 것이라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없듯이 6000여점이 다 소중하지만, 최근에 구한 것 중에 하나가 더 가슴에 깊게 남아 있는데요. 현존하는 목판 중 세계에서 가장 크고 상태가 좋은 판목인 <정토만다라> 목판을 구한 일입니다. 우리나라 인쇄문화는 고려시대하고 세종조까지는 세계 최고의 인쇄문화를 자랑했습니다. 근데 근대에 오면 일본이 세계 최고의 인쇄문화를 구가하게 되는데 170여년 전에 만들어진 목판 원판을 구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그걸 찍은 원판을 10년 전에 구했어요. 저는 고판화에 미친 사람이니까 그 때 당시 너무나 황홀했습니다. 게다가 사이즈도 1m*1m로 굉장히 큰 편이에요. 거기에 펜으로 실같이 그린 것을, 정토를 목판으로 찍어낸 것이 <정토만다라> 변상도였는데 그걸 구하고 너무 기뻐서 전시도 많이 했습니다. 그걸 지극히 사랑하다 보니까 2년 전에 그 원판을 구하게 됐습니다. 저희가 소장한 6,000여점 중에 4,000여점은 전국을 누비고 중국, 일본, 티벳, 베트남 등을 다니면서 직접 구한 유물이지만, 2,000여점은 10년 전부터는 해외 직구를 통해 구한 것입니다. 인터넷 경매 사이트에는 세계적인 컬렉션, 박물관의 학예사, 고미술 판매상들이 수없이 경쟁하는 곳인데 2년 전에 이를 찍은 원판이 인터넷 경매에 떴습니다. 보통 7일 동안 경매하는데, 저의 모든 열정과 시간과 돈을 투자하여 낙찰 받는데 성공했습니다. 일본 세관을 통과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현지에 사는 친지에게 맡기는 한이 있더라도 낙찰 받겠다는 의지가 통했던 것 같습니다. 하늘이 도우셨는지 일본 세관을 무사히 통과해 저희 박물관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지극히 무조건적으로 사랑하여 얻게 된 귀한 유물입니다.
▲ <정토만다라> 변상도 원판
Q 가장 아끼는 작품을 소개해주신다면?
저희 박물관에 가면 조선시대 최고의 판화 원판 책이 있어요. 『오륜행실도』인데 책은 많이 남아 있지만, 그걸 찍은 원판을 찾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정조 때 만들어진 게 철종 때 불이 타버렸고 철종이 다시 지시해서 만든 게 소리 소문도 없이 한 점도 안 남았던 것을 제가 2015년에 그것을 찾아서 발굴을 하게 됐어요. 앞뒤로 목판에 새겨져 있는 것을 톱으로 바늘을 썰고 그리고 사각의 상자를 만들고 상자 안을 보면 동판으로 지은 상자가 또 들어 있습니다. 그 안에 보면 부지깽이 같은 것들이 들어있는데 그게 차 끓여 먹는 화로예요. 우리나라 사람들의 화로는 놋쇠화로인데 이게 일본 사람들이 쓰는 전형적인 일본식 ‘이로리’라는 화로입니다. 이것이 발굴됐을 때 국정감사에까지 등장했던 우리 민족문화재의 수난을 보여주는 아주 귀중한 유물입니다. 이게 제가 첫 번째로 꼽는 가장 소중한 소장품입니다.
▲ 오륜행실도 판목
Q 박물관 운영하시면서 가장 큰 보람을 느낄 때는 언제인가요?
며칠 전에도 미국 캔자스 주립대학의 미국인 교수 한 분이 저희 박물관 유물을 자신의 논문에 싣기 위해 찾아와서 저희 박물관의 유물을 보고 감탄하면서 많은 자료를 조사해 갔습니다. 이렇듯 전국에서는 물론 미국, 중국, 일본, 베트남, 유럽 등 해외 각 국에서 고판화 유물을 연구하고 저희 박물관에 조사하러 올 때 보람을 느낍니다.
Q 독서대전 본행사 기간에 중앙도서관에서 진행할 그림책 전시 컨셉에 대해 소개해 주시기 바랍니다.
먼저 대한민국 독서대전이 원주에서 열릴 수 있도록 노력하신 많은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게다가 독서대전에 메인 전시로 저희 고판화박물관이 초대되어 기쁘게 생각합니다. 옛 인쇄문화가 발전된 원주에서 독서 대전을 하는데 원주한지가 빛나는 인쇄 문화의 도시, 그림책 도시를 알리는 데 작은 도움이라도 될 수 있도록 아시아의 중요한 옛 그림책들과 불교, 도교, 유교, 기독교 등 종교서적을 비롯하여 소설, 희곡, 미술교과서인 화보집 등 다양한 소재로 한국, 중국, 일본 등 국가별로 전시하여 옛 그림책의 보편성과 차별성을 관람객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유도할 예정입니다. 입체적인 전시가 될 수 있도록 옛그림책이 만들어진 판목과 그걸 찍은 인출 판화 작품들을 전시하여 옛 책의 장정법도 이해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우리나라는 특히 책 표지 만드는데 굉장히 옛날부터 관심이 많았어요. 그 표지를 만드는 원판을 ‘능화판’이라 하는데 굉장히 아름다운 디자인이 많이 있습니다. 그것들을 전시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찍은 책 표지도 보여드리고 인출 판화도 보여주는데 굉장히 디자인적인이어서 디자인의 원형을 볼 수가 있습니다. 한 발 더 나아가 그림책의 삽화들이 지도나 교육교재로 활용된 궤도로 만들어졌던 유물도 공개될 예정이어서 입체적인 전시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Q 독서대전을 통해 거는 기대나 바람이 있다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요즘 사람들은 현대적인 책들에 대해서만 관심을 많이 갖는데 옛날 책이 있었기 때문에 현대책도 만들어진 것입니다. 옛날 책의 그 모티브들을 현대에도 어떻게 응용을 해나갈 건지 생각해보는 계기가 된다면 좋겠고 여기 오는 모든 관람객들이 디자인의 핵심인 이 고판화를 보고 우리나라를 일으킬 수 있는 또 하나의 큰 줄기가 바로 이 디자인이라는 것을 깨우쳐준다면 좋겠습니다. 독서 대전을 통해 원주는 500년 전부터 그것을 구가했던 자랑스러운 도시라는 게 각인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원주가 혁신도시, 기업도시 등으로 새롭게 발전하는 신도시가 아니라 예부터 인쇄문화가 발전되었던 문화도시임이 전 국민에게 알려지는 계기가 된다면 좋겠습니다.
▲ 본행사 기간중 고판화 그림책 전시